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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롱이 이야기
    끄적끄적 2019. 8. 29. 09:52

    다롱이는 같은 동네 어느 개가 낳은 여러 마리 새끼들 중 한 마리로, 나의 국민학교 시절 마지막 여름 즈음에 얻어서 자전거 바구니에 태워 데리고 온 강아지이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면 아마도 95년도이니 다롱이도 아마 95년생 쯤 되지 않을 까 싶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때쯤 우리 가족들은 같이, 그리고 또 각자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던 것 같다. 한두해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었고, 이후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셨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도 많이 드시던 술을 그때는 매일같이, 또 많이 드셨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섰던 보증이 문제가 생겨 갑자기 큰 빚을 지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던 집이 더 어렵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부모님은 일상처럼 다투셨었고, 덕분에 나와 중학생이던 형은 또래의 아이들이 으레 그랬던 것보다도 더 많이 어두워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두운 집 마당에 풀여놓아진 새하얀 강아지는 고맙게도 그곳이 어떤 곳이든 상관 없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다니며 새로운 장소를 만났고, 안그래도 힘든일 투성인데 웬 강아지를 데리고 왔냐며 꺼려하시던 어머니도 그래도 강아지가 하얗고 이쁘다며 조금 누그러진 말씀을 해 주셨다.

    방학이라 집에 있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여느날 처럼 전날 저녁 술을 많이 드시고, 또 여느 날 처럼 엄마와 다투시고 늦게까지 주무시던 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한편에 앉아 계셨었는데, 다롱이가 그 앞에서 두발로 일어서서 재롱을 부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한동안 보지 못했었던 아버지의 웃음을 그 때 오랜만에 보았던 것 같아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와 생각해보아도, 그때의 아버지는 웃을일이 없었을 것 같다. 반대의 경우는 참 많았었겠지.

    그렇게 다롱이는 마당에 나오는 우리 가족들에게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애교를 부렸고, 그때나마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게 우리 가족들을 위로 해 주었다. 인근 공장에 다니시던 엄마가 출근할때나 나와 형이 학교에 갈 때면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 까지 따라오며 배웅 해 주었고, 집에 돌아올 때면 동네에서 놀다가 아는체를 하는 녀석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IMF가 오고, 또 다른 빚 보증에 문제가 생겨 빚도 더 생기고, 엄마와 아버지의 관계는 더욱 안 좋아졌다. 내 머리도 더 굵어졌고, 하지 않던 방황도 조금씩 하며 부모님을 더 힘들게 해 드린적도 많았다. 언제나 집에 오는 길에는 오늘은 또 아버지가 술 드시러 가지는 않으셨을까 걱정하고, 또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으면 그 허전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집에 오는 길 그 무거운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언제나 꼬리가 떨어질까 걱정될 정도로 흔들며 반겨주는 다롱이가 있어서 큰 위안이 되었다.

    한번은 한참 삐딱선을 타던 내가 시내 지하상가에서 아마도 비닐로 만든 가짜가죽 구두를 사 신고 뚜벅뚜벅 어색한 발 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다롱이가 이날은 웬 이상한 사람이 걸어들어오는 줄 알았는지 멀리서 크게 짖으며 달려나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를 보고는 한참 어리둥절 하다가 마지못하는 듯 반겨주기는 했었다. 마당에 나와있던 엄마도 그 광경을 보고는 재미있다며 한참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다롱이가 우리집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밝게 해 주는 동안 어느새 엄마와 아버지는 예전과 같이 크게 다투시지는 않게 되었고, 갑자기 불어난 빚에 거의 무너질 뻔 했던 집도 엄마와 아버지가 열심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하신 덕분에, 그리고 아껴가며 살아온 덕분에 간신히 이자라도 제때 갚을 수 있게 되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간신히 마음을 다 잡고 나름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까이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고, 그사이 형은 군대도 다녀왔다. 대학교에 갔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더 먼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다롱이가 우리집에 온 후 그렇게 12년이 지나갔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에도 다롱이는 우리집 현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많이 노쇄해서 내가 마당에 들어서도 예전처럼 달려나와 반겨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걸음이라도 나와서 나를 반겨 주었고, 나중에는 누워있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눈길로 나마 나를 맞아 주었다. 그때의 다롱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느날 집에 내려갔더니 몇일전 다롱이가 죽었다고 엄마가 말씀 해 주셨다. 다롱이는 아버지가 뒷산 양지바른 곳을 찾아 묻어 주었다고 하는데 한번도 물어 찾아가보지는 못했다.

    다롱이가 있을 때에는 한번도 말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때에도, 또 아직까지도 다롱이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만약 녀석이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그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올 수 있었을까. 녀석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어둡고 긴 터널을 조금이나마 웃으며 지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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