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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 키우는 이야기, 2] 아기 이름을 지으며 드는 생각
    끄적끄적 2021. 3. 2. 11:39

    씩씩이의 이름이 생겼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천천히 이름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태어나고 한달 이내에 출생 신고를 해야 해서 조금 급하게 지은 것 같다. 조금 더 씩씩이로 부르며 어떤 아이인지도 더 알아보고 아이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고도 싶었다. 태어난지 몇일 되지 않은 아이와 평생 같이 할 이름을 벌써부터, 그리고 부모인 우리가 정해야 한다니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작명소나 철학관에 가서 돈을 주고 이름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아이의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와이프의 손으로 오롯이 지어보고 싶었다.

    아이 이름을 지으려고 이런저런 이름을 떠올려보니, 떠올라오는 모든 이름들은 그야말로 나의 고정관념의 집합체인 것 같았다. 나는 고정관념이 특별히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생각하는 이름들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 간접적으로 접했던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름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이 덧 씌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좋은 이름이 떠올라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괴롭히던 어떤 녀석의 이름의 글자가 들어가면 우리 아이 이름으로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이름과 글자를 제하다 보니 남는 이름은 사실 몇가지 되지 않았다.

    한글 이름으로 몇가지 후보를 정해놓고 나서, 남들도 다 한다는 작명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여기에도 허무맹랑한 부분이 많았다. 한글의 자음으로, 모음으로, 음양이 어쩌고, 또 자원이 어쩌고를 여러번 따진 다음에 다시 한자로, 획수를 이용해 사격수리가 어쩌고, 생년의 사주에 불이 없네, 물이 없네 하며 또 따지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믿을 구석이 별로 없는데 왜 이런것을 지켜서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들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특히나, 이름 석자의 획수를 가지고 1,2번째, 2,3번째, 등등 여러 조합의 글자의 것들을 더해서 나온 숫자로 흉이네 길이네 따지는건, 초등학교때 좋아하던 친구 이름과 내 이름을 번갈아 써서 천생연분 인지를 따지는 것과 뭐가 그리 다를까 싶었다. 그나마 있는 사주를 따져 이름을 짓는 것의 한가지 기능은 이름에 쓰이는 한자를 사람들의 생년월일에 따라 다르게 쓰이도록 하는 것인 것 같다.

    다들 따른다는 작명의 세계에 올라 섰기 때문에 그런것도 따져서 아이 이름을 짓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다. 사주팔자와 사격수리를 따지다보니 한자는 흔히 아는 쉬운 한자나 좋은 뜻으로 이름을 짓기가 어려웠다. 작명 방법을 따르는 좋은 이름 한자를 찾는 것은 거의 Brute-force 방법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와같은 고민을 몇주간 해서 많이 흔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해 보이지 않은 이름으로 아이의 한글 이름과 한자를 정했다. 이름을 정해놓고 몇일 후에 동네 행복센터에 가서 출생신고를 했다. 와이프와 나, 두줄로 고정일것만 같던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 이름 한줄이 더해져 있어 기분이 조금 묘했다. 우리 아기가 우리가 지어준 이름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 더 커서는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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