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소 운반차를 보았다
    끄적끄적 2022. 12. 21. 14:54

    언젠가, 운전을 하다가 소 운반차를 십 수년만에 보았다. 소는 타고있지 않은 채로 도로를 달리던 빈 소 운반차를 보며 마치 자식들이 빠져나간 시골 집을 보는 것 같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엔 소 운반차를 꽤나 자주 보았다. 시골집 마당 건너편에 소 마구간이 있었던 덕분에 철마다 어린 송아지를 싣고 오거나, 아니면 조금 자란 소들을 다시 싣고 나가기 위해서 소 운반차가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트럭은 아마도 1톤, 큰 것들은 아마도 10여톤 정도 되는 트럭들이지만 우리집 마구간은 그리 크지 않아서 큰 소 운반차가 들어온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 마구간이 있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늦게 오시고 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저녁 무렵엔 술을 드시느라 소들의 여물을 작두로 썰어주고 사료로 부어주고 물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은 거의 형과 나의 차지였다. 어린 시절의 나도 친구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가고 싶었는데도 다섯 시 까지는 집에 돌아가서 소들이 먹어야 할 여물과 사료와 물 같은 것들을 챙겨주어야 했다. 가끔 어린 송아지가 들어온 다음이면 분유도 타서 먹였었던 것 같다. 소들의 먹을 것만 챙겨줬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꼭 저녁이면, 그것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 계시던 저녁이면, 소들이 울타리를 열거나, 넘거나, 아니면 부수고는 탈출하기가 일쑤였다. 마당 너머에서 두둑 두둑 하는, 우리를 나와 신이 난 소들의 발굽 소리가 들리면 나와 형은 한숨부터 쉬며 열살 언저리 된 어린 손으로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소들을 우리로 몰아야만 했다. 그래서 형과 나만 집에 있는 저녁에는 소들이 탈출하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 했었다.

     

    집에 소 마구간이 있어 싫었던 것들 중에 소 운반차가 들어와서 소를 싣고 나가는 것이 나는 가장 싫었다. 힘들고 귀찮기는 해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여물을 챙겨주고, 사료를 부어주고, 물을 받아주고, 또 내가 심심할때면 눈도 맞춰주고 말 상대가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되어주기도 했던 소들이 다시 실려 나가서 도축장으로 가는 것은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학교 다녀와서 집이 보이는 골목을 돌았을 때 소 운반차가 보일 때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 마구간에는 더이상 어린 송아지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가 그 무렵 송아지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우리집에는 다시 송아지를 사서 넣을만한 돈이 없어서였음을 내가 알게 된 것은 훨씬 이후에 알게 되었다. 아직도 시골 집에는 소 마구간이었던 건물의 지붕과 울타리만 남아서 가끔씩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 올려 주고 있다. 

     

    Cow, created by Craiyon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