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인도 배낭여행기 (2) (2005/12~2006/2), 뉴델리, 마날리, 챈디가르
    여기저기 여행기 2020. 3. 14. 16:28

    한참을 헤매다 몇개의 여관을 알아봐서 네명이 잘 수 있는 트리플 베드 룸을 겨우 잡아서 들어갔다. 처음 묵어보는 인도 여관의 방은 가난한 대학생 배낭여행자들에게도 충격적일 만큼 좋지 않았다. 겨우 네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방, 흙먼지 가득한 타일 바닥, 다 일어나있는 페인트 벽,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는 샤워기 등… 전체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비록 수동이었지만 비데가 있는 것은 조금 신기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다보니 곧 새벽이 밝았다. 늦은 시간 음산한 빠하르간지와 열악한 숙소 환경에 충격을 받은 우리는 뉴델리는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으로 가기로 한 곳은 마날리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만년설이 있다고 해서 가기로 한 것 같다. 오전에 여관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메고 숙소를 떠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 보니 저녁에 출발하는 버스만 있다고 해서 저녁까지는 주변을 돌아 보기로 했다. 그날 돌아본 곳은 붉은 요새 (레드포트)였다.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정면의 성벽이 인상적이었다. 베낭을 어디 두지도 못하고 메고 다녔는데, 20킬로 가까이 나가는 베낭을 메고 구경을 다니자니 이게 관광을 하는건지 유격훈련을 하는 건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긴 한데, 원래 이런것이 배낭여행인가, 하며 그 후로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며 고생을 했다.

     

    레드포트


    마날리로 넘어가는 버스는 예정대로 저녁 무렵에 출발했다. 인도에서 보통의 여행객들은 원래 슬리퍼스 라고 불리는 나름 고급 2층 버스의 침실칸으로 보통 이동하는데, 이 버스를 타야 배낭을 어디 싣거나 할 수 있기도 하고, 열시간도 넘는 이동 거리동안 그나마 누워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버스는 여행사에서 예약해서 지정해주는 곳에서 타면 되는데, 처음으로 인도에서 버스를 탄 우리는 그저 버스터미널에 가면 되겠지 하며 공용 터미널로 갔고, 로컬 완행 버스를 타게 되었다. 

     

    뉴델리의 버스터미널


    이 버스는 저녁 무렵에 타서 열 여섯 시간 정도를 달려 다음날 오전에 마날리에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는데, 한번에 가는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 경유지를 거쳐가는 식이었다. 배낭을 따로 실을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처음에는 옆 좌석이 비어 있어서 옆 좌석에다 배낭을 두었는데, 중간 경유지를 거치며 점점 사람이 많아지다가 급기야 앉을 자리가 부족해 져서 하는 수 없이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 둘 수 밖에 없었다. 인도에서 한달 넘게 버티기 위해 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밑반찬들과 라면, 소주 등을 챙겨 넣은 내 배낭은 20킬로를 육박했었고, 그 배낭을 얹고 밤을 새서 달리는 길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마비가 온 것인지, 통증도 더 느끼지 못할 때 쯤 되어서 마날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게 여행길인지 지옥훈련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날리는 인도 북쪽의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 인근의 도시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도시가 작아 놀랐다. 북적이던 뉴델리를 떠나와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 막연히 히말라야 산맥 근방에 있다고 해서 아주 이국적인 풍경을 볼 것이라 기대하고 왔지만, 기대만큼 가까이 있지 않은 탓인지 여느 산 밑 동네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생각했던 높은 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그런 풍경은 카슈미르 쪽에 있는 레나 스리나가르 같은 도시로 가야 볼 수 있을 듯 했다. 

     

    마날리 풍경

     

    버스에서 내려 계곡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서 숙소 목적지로 삼은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배낭을 메고 걷는 언덕 길은 마치 유격 훈련장 가는 길 같았다. 이 마을은 온천과 사과주스가 유명했던 기억이 난다. 온천은 하지 못했지만, 이 마을의 사과주스는 달달하니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도착한 마을에서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눈이 쌓여 있어 히말라야 산맥 근방에 왔구나 하는 느낌도 비로소 들었다. 마날리에서 구한 숙소는 뉴델리에서의 숙소에 비해 아주 넓었다. 따듯한 물도 나온다고 주인 아저씨가 장담해서 기쁜 마음으로 씻으러 들어 갔는데 역시 따듯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뉴델리에서는 그나마 따듯한 날씨라 차가운 물로 씻을 만 했는데, 여기는 북쪽의 추운 동네라 차가운 물로 씻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도착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무거운 배낭으로 고생했던 우리는 가지고 온 식량들을 다 먹어서 없애기로 했다. 이름하여 고추장 라면 깻잎 소주 파티. 멀리 이국땅에서 먹는 라면과 소주는 한국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뭔가 낭비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날리 숙소에서 내려다본 풍경

     

    마날리에서는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 숙소의 테라스에서 맞은편 산등성이를 구경하거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서 근방의 힌두교 사원을 둘러 보거나 하며 몇일간 이동하느라 고생한 심신을 달랬다. 몇일간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암리차르에 있는 황금사원 (Harmandir Sahib)로 가기로 했다. 이유는 황금사원에서 무료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한다고 해서. 왠지 무료 게스트 하우스는 한번 체험해 봐야지 라고 생각했다. 마날리에서 암리차르는 바로 가는 길이 없었고 챈디가르 라고 하는 도시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에 챈디가르 행 저녁 버스를 탔다. 

    챈디가르에도 새벽 무렵에 도착했고, 암리차르로 가는 버스는 저녁 무렵에야 다시 출발해서 비는 낮시간 동안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챈기다르는 르 코르뷔지에 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도시라고 한다. 일행 중 건축과 친구는 무척 감격하며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나와 같은 무지렁이들은 그저 따라다니며 잘 모르는 세계를 탐험했다. 

    챈디가르는 도시의 길들이 가로 세로 바둑판 처럼 반듯하게 나 있어서 이 곳이 계획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르 코르뷔지에가 즐겨 사용했다는 건축 소재인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는 도시 곳곳의 웅장한 건물들도 신기했고, 오픈핸즈라고 하는 평화의 손 모양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상당히 광활해서 마치 비행장 같은 도시의 공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평화의 손


    챈디가르의 거리는 배낭을 메고 걷기에 블럭들의 크기가 너무 커서 힘들었다. 그래서 탈것을 찾다보니 자전거로 수레를 끄는 릭샤 (사이클 릭샤)를 잡아 탔는데, 한눈에 봐도 연로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너무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가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목적지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얼마간의 팁을 더해서 드리고 내려서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다시 걷고 또 걸어서 찾아간 곳은 넥첸드 가든 (Nek Chand Rock Garden) 이라는 쓰레기를 이용해서 조성한 공원이었는데, 이곳도 기억에 남는다. 보통 버리는 물건을 모아두는 곳은 쓰레기장이고 사람이 쉴 만한 공간이 아닌데, 이 곳은 버리는 물건들로 공원처럼 꾸며서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할 수 있어서 신기했었다. 

     

    넥챈드 가든


    인도를 다녀온 이후에 건축 관련 책이나 티비에서 챈디가르를 뜻밖에도 몇번씩 접하게 된 적이 있는데 한 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둘러보고 온 곳이라 그런지 꽤나 반갑게 느껴졌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